스펜서 백작의 주장, 다이애나 사망 후 찰스 왕세자의 ’들뜬 환희’ 발언 파장


“그날 아침, 그는 환희를 숨기지 못했다”

1997년 9월,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영국 전역은 충격에 잠겼다. 그러나 그 장례 뒤에는 아직도 논쟁이 이어지는 장면이 있었다. 다이애나의 동생 찰스 스펜서(Charles Spencer) 백작은 훗날 인터뷰와 저서를 통해, 다이애나 사망 소식을 전달받은 찰스 왕세자가 슬픔보다 이상한 들뜬 기분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스펜서 백작에 따르면 찰스는 다이애나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은 직후 “들뜬 환희를 숨기지 못했다”고 하며, 그 반응이 가족들에게 오랜 상처로 남았다는 것이다.

스펜서 백작이 밝힌 당시 상황

스펜서 백작의 주장에 따르면, 1997년 8월 31일 새벽 파리 폰퐁 드 랄마 터널에서 발생한 사고로 다이애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왕실에 전해졌고, 이후 그녀가 사망했다는 통보가 이어졌다. 백작은 이 시점에서 찰스 왕세자의 태도가 예상과 달랐다고 회고했다. 슬픔에 잠기기는커녕 오히려 안도 혹은 흥분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그가 다이애나 사망 20주기를 전후해 출간한 회고와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다이애나 왕세자빈, 1997

이미지: 다이애나 왕세자빈(Diana, Princess of Wales) —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Diana, Princess of Wales 1997, CC 라이선스)

실제로 다이애나 사망 당시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의 시신을 파리에서 영국으로 옮기는 작업에 직접 참여했으며, 이는 왕실 내 논의 끝에 이뤄진 결정이었다. 그러나 스펜서 가족 측은 왕실, 특히 궁정 전반의 초기 대응이 냉담했다고 느꼈고, 이런 감정의 대립 속에서 찰스의 태도에 대한 해석이 갈렸다. 같은 장면을 한쪽은 ’충격으로 인한 평정심의 상실’로, 다른 쪽은 ’환희’로 본 것이다.

영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어떻게 봤나

BBC를 비롯한 영국 언론은 스펜서 백작의 주장을 보도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당시 찰스 왕세자가 사망 소식을 접한 정확한 심경은 제3자가 확인할 수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왕실 전문가들은 인간이 극단적 충격 상황에서 보이는 정서적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들뜸’으로 보이는 모습이 스트레스 반응이나 디스오시에이션(해리) 현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해왔다.

반면 다이애나의 지지자들과 일부 타블로이드 언론은 이 주장을 ’왕실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 활용했다. 다이애나 사망 당시 왕실의 초기 대응—빅벤 침묵, 깃발 게양 지연 등—이 여론의 분노를 샀던 전례가 있었기에, 찰스에 대한 이런 의혹은 쉽게 여론의 공감을 얻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다이애나 사망 직후 공개적 애도 표현을 미루며 비판을 받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스펜서 백작은 1997년 다이애나 장례식 추도 연설에서 “혈통상의 남동생”이 아니라 “자매의 보호자로서” 말한다고 선언하며 왕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바 있는데, 이 연설은 지금까지도 왕실과 스펜서 가족 사이 긴장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회자된다. 백작의 최근 주장은 이런 오래된 갈등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왕실은 침묵, 논쟁은 계속

찰스 왕세자(현 찰스 3세) 측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별도의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왕실의 관례상 개인적 감정에 대한 외부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펜서 백작의 주장은 확증이 불가능한 일대일 대화에 기반한 것이어서 사실 관계로 검증되기 어렵다는 점이 보도마다 반복적으로 지적되었다.

다만 다이애나 사망은 영국 왕실이 여론과의 관계를 재편해야 했던 분수령이었다는 점은 널리 인정받는다. 이 사건 이후 왕실은 미디어 대응 방식을 바꿨고, 찰스 왕세자의 대중 이미지 회복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스펜서 백작의 발언이 뉴스가 될 때마다 그 ’1997년의 상처’가 되살아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살사리의 결론

이 이슈를 종합해보면, 스펜서 백작의 주장은 검증 불가능한 개인적 경험담이라는 점에서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극심한 충격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정서 반응은 다양할 수 있고, 목격자의 감정 상태나 관계의 역사가 기억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 주장이 여전히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다이애나 사망과 왕실의 대응이 여전히 영국 사회에서 감정적인 논쟁거리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번 발언의 의미는 ’찰스의 진심이 무엇이었는가’보다, 27년 전 그날의 상처가 아직도 가족 간, 그리고 왕실과 국민 사이의 신뢰 문제로 남아 있다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한 줄 정리: 스펜서 백작의 ‘환희’ 주장은 검증 불가능한 개인적 회고이지만, 다이애나 사망을 둘러싼 왕실과 스펜서 가족의 오래된 갈등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원문 출처: BBC (https://www.bbc.com/news), BBC News — Royal Family 관련 보도 (https://www.bbc.com/news/uk)

위 글은 원본 출처 기사의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하며, 원문과 다른 분석·평가·종합 부분은 집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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